영화로 불어공부 하기 : 프랑스 영화 추천 BEST 5
책상에 앉아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때로는 불어라는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기도 하죠. 얼마나 더 해야 들릴까? 말이 트일까? 왜 해도해도 끝이 없을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때때로 우리에게 상실감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실력이 멈춘듯한 그 시기가 비로소 귀와 입이 트이는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이런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영화를 찾아봤어요. 멍하게 앉아서 즐기는거예요. 불어 자막으로 설정하고, 앞에 펜과 종이를 놓아둔 채 공부하듯이 아니라, 정말 오롯히 영화만 즐기는 것. 그렇게 뇌와 귀를 속이는거예요. 마치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사실은 여전히 불어가 내 귀와 머리에 들어오고 있는데도 말이죠. 영화로 불어 공부를 하면 학원이나 교재에서는 배울 수 없는 불어 고유의 분위기, 리듬을 익힐 수 있어요.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실테지만, 교재의 리스닝 지문과 실전에서 듣는 프랑스인의 발음, 속도는 굉장히 달라요. 당연히 실전 불어가 훨씬 빠르고 음삭제도 많죠. 그래서 현지에 가는 방법 외에 실전 불어를 익힐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영화가 최고랍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공부하면 프랑스 문화를 한 번에 배울 수 있어요. 배우들의 표정과 제스처, 걸친 옷들 그리고 먹는 음식까지도. 영화를 통해 그 문화에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면 결국 언어도 익숙해지게 되죠. 이 외에도 리스닝과 스피킹 실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고 무엇보다 재밌게 불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게 영화의 큰 장점 아닐까요? 저는 영화로 불어 공부를 할 때 '무조건 재밌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미 다른 공부 방법들로 지쳐있기 때문에 영화까지 힘들게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한글 자막 켜고 편하게 감상하다가 영화 대사 중에 평소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나오거나, 궁금한 표현이 있으면 그 장면만 몇 번 돌려보면서 대사를 따라해보곤 했답니다. 언어는 방법 보다는 꾸준함이 통하는 영역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겐 이 방법이 최고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들을 보면 좋을까요? 아멜리에, 러브미이프유데어, 언터쳐블같은 영화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추천하는 의미가 없을 듯 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즐겁게 봤던 영화들을 추천해드리려고 해요.
1. IL SE MARIÈRENT ET EURENT BEAUCOUP D'ENFANTS (해피리 에버 애프터)
첫번 째 추천 영화는 실제 부부인 샤를롯 갱스부르와 이반 아탈이 부부로 나오고, 남편 이반 아탈이 감독까지 했다는 사실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해피리 에버 애프터입니다. 조니뎁의 까메오 출연으로도 유명한데요. 혹시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배경으로 샤를롯 갱스부르와 조니뎁이 음반점에서 어색한 눈맞춤을 주고받는 영상을 보신 적 있으시다면, 벌써 이 영화의 일부를 보신거예요! 영화는 빈센트와 가브리엘의 관계를 중점으로 진행되지만, 동시에 빈센트의 두 친구 조지와 프레드의 이야기도 돌아가며 보여줍니다. 조지는 빈센트와 마찬가지로 오랜 결혼생활에 탈출구를 찾는 유부남입니다. 반면 프레드는 끊임없이 여자를 갈구하고 그걸 즐기며 살아가는 싱글남이죠. 이들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해피리 에버 애프터는 이야기가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시작부터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기 때문에 줄거리를 조금도 알려드리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영화가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다양한 사연의 소개를 통해 인간 본능에 대해 묘사하고자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각 배역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전체적인 분위기나 대사들이 굉장히 프랑스적이라고 느꼈던 영화입니다.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 PRÊTE-MOI TA MAIN!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성공한 조향사로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루이스. 영화는 루이스의 유년시절을 빠르게 되짚어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 장면을 통해서 루이스의 가족관계와 그들만의 리그, 룰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루이스에게는 다섯명의 여자 형제가 있는데, 이들과 루이스의 어머니는 43살이 된 루이스가 이제는 결혼을 해서 정착해야 할 때라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루이스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계획을 짜게 되는데요. 가짜로 예비신부를 고용해 결혼식 당일, 자기를 비참하게 차버리게 하고 다시는 가족들이 감히 '결혼'의 결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 영화는 2006년 개봉 당시 빠르게 예매율 1위에 등극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인기 있는 영화였습니다. 아마 루이스 역을 맡은 알랭 샤바와 루이스의 가짜 예비신부 엠마 역을 맡은 프랑스 국민 여배우 샤를롯 갱스부르의 유명세 덕을 보기도 했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 유머나 캐릭터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루이스와 엠마의 계약연애와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다른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움이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3. L'AUBERGE ESPAGNOLE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프랑스 어학연수 당시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입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젊어지고 설레는 영화.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주인공으로 나오는 프랑스 청년 자비에는 유럽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를 통해 스페인에서 1년간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셰어하우스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언어적,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고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발생하게 되죠. 이 영화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은 유럽 청년들의 호기심과, 자유분방함, 뜨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줍니다. 20대에 유럽으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굉장히 의미있는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4. LE GOÛT DES MERVEILLES (사랑해도 괜찮아)
죽은 남편의 과수원을 힘겹게 돌보며 살아가는 '루이즈'는 어느날 운전 중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한 남자를 치고 맙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 루이즈와는 달리 남자는 병원에 가자는 루이즈의 말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어하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루이즈는 남자의 상태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말죠. 그의 이름은 '피에르'. 어딘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남자는 그 날부터 루이즈의 일상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루이즈와 그의 두 자녀와 알 수 없는 친밀감을 형성해갑니다. '사랑해도 괜찮아'는 남프랑스의 영상화보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영상을 자랑합니다. 중간 중간 '피에르'의 대사는 마음을 요동치게 하구요, 약간의 갈등과, 시원한 해결 그리고 잔잔한 감동까지. 영화가 끝이 나면, 왠지 뜨끈한 건강식 한 끼를 먹은 기분이 드는 영화입니다.
5. AVIS DE MISTRAL (러브 인 프로방스)
마지막으로 추천드리는 영화는 러브 인 프로방스 입니다. 파리에 살고 있는 아드리안, 레아, 테오 삼남매는 어머니가 급하게 미국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갑작스레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첫 만나부터 어긋난 삼남매와 할아버지의 관계이지만 귀여운 막내이자 청각장애인 테오와 할머니의 중재로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갑니다. 이후 관계의 반전을 가져오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서로간의 가족애를 확인하는 따뜻한 영화인데요, 남프랑스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 최근 방영했던 tvN의 '여름방학'에서 뒷마당이 마치 이태리 같아서, 배우 정유미님이 '프랑스 영화(이태리 영화였던가)'에서 나올 법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아마 이 영화가 딱 그 느낌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프랑스 영화 중에 괜찮은 영화는 이 외에도 굉장히 많은데, 오늘은 제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던 초기에 접했던 영화들 위주로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최신 영화 위주로 추천해보도록 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